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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길 함께한 대통령만 네 명이라는 그는 |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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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프로잡스 작성일18-04-14 14:40 조회1,5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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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혼식장에 가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여러분 자녀들 결혼식에 가기 어려우니 내 아이 결혼식에 안 와도 좋다”고 했다.

식장에서 그를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직업은 장의사다. 

연화회 유재철(59) 원장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의사 가운데 하나다. 

최근 세상을 떠난 우리나라 대통령 네 명, 법정 스님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이 바로 유 원장이다.


장의사라고 하면 영화 친구에서 배우 장동건이 아버지 직업을 묻는 교사에게 장의사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장의사란 단어에 대한 교사와 급우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2018년 현실은 다르다. 고용노동부가 3월 발표한 ‘2016~2030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력수요전망’은 고령화로 노인 관련 고숙련 서비스업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내용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장의사는 전망이 좋은 직업이다. 유 대표를 만나 장의사로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안장식. 유재철 대표가 태극기 바로 왼쪽에 양복을 입고 서있다. / 유재철 대표 제공

◇ 맥없이 사는 게 더 죽은 것 같아서

- 장의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고인이 돌아가신 때부터 유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일 전반을 맡습니다. 염습(고인을 목욕시킨 뒤 옷을 입혀 관에 넣는 것), 매장, 봉분 만들기, 초우제(장사지낸 뒤 지내는 제사) 등도 돕습니다.”

- 어떻게 시작했나

“79학번으로 전문대학교 기계과에 들어갔습니다. 전역하고 1986년 아파트 창틀 설치하는 가게를 차렸는데 매출이 적어 2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 뒤로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해 정말 맥없이 살았습니다. 1994년 광주광역시에서 장의사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기술만 있으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을 배워 그해 연화회를 차렸습니다.”

- 고인을 대하는 게 무섭지 않았나

“제가 살았던 경기도 광주에서는 장례식을 집에서 치렀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염하는 걸 보고 자랐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제가 머리를 받치는 동안 어른들이 염을 하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장의사를 꺼리는 게 걱정이었습니다. ‘소 잡는 사람, 똥 푸는 사람, 장의사는 자기 직업을 못 밝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 딸이 네 살이었는데 “딸 시집 못 보낸다”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그래도 장의사 일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 염을 끝냈을 때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족들이 제 손을 붙잡고 ‘가족을 잘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습니다. 고인과 유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먹고 살려고 시작했지만 나중엔 일이 좋아서 했습니다. 사업을 그만두고 맥없이 지낼 때보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게 좋았습니다.”

◇ 대통령 네 명 모시기까지

- 어쩌다 대통령까지 모셨나

“1996년 불국사 주지까지 하셨던 서경보 스님의 7일장을 지냈습니다. 스님의 옷고름, 속고름 등을 매는 법이 따로 있어서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2~3년간 스님들께 불교 장례 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2000년 동국대학교 불교 대학원에 장례문화과 개설을 요청해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학원에서 한국 단체장(단체가 여는 장례식)에 대해 졸업 논문을 썼습니다. 자료는 행정자치부 의전팀 직원에게 받았습니다. 그 인연으로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도울 게 없을까 싶어 행정자치부로 갔습니다. 모두 비상 출근해있었는데 논문을 쓸 때 만났던 직원이 최 대통령 장례를 부탁했습니다. 최 대통령과 현충원에 합장해야 하니 “2년 전 돌아가신 영부인 홍기 여사의 이장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 그때부터 대통령 서거 때마다 연락을 받았나

“2009년 탤런트 여운계 씨를 염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급하게 만장(고인을 기리는 글을 적어 깃발처럼 만든 것)을 만들고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7일간 국민장을 치렀습니다. 가장 힘든 장례식이었습니다. 같은 해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는 고인 모실 곳, 조문받을 곳, 영결식장을 마련했습니다. 염은 천주교 교인들이 했습니다. 2015년 김영삼 대통령 때는 염을 하고 국가장을 치렀습니다.”

법정스님을 다비하러 가는 길. 유재철 대표가 영정 왼쪽에 양복을 입고 서있다. / 유재철 대표 제공

- 가장 기억에 남는 장례가 있다면

“2010년 법정 스님 장례입니다. 법정 스님은 ‘관과 수의를 따로 쓰지 말고, 평소에 입던 승복을 입혀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태워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입으셨던 승복 중 깨끗한 옷을 골라 입혀드리고 자주 쓰셨던 대나무 평상에 판자를 대 다비(스님을 화장하는 것)하는 곳까지 옮겼습니다. 스님 뜻에 따라 사리는 챙기지 않았습니다. 큰 유골만 수습해 다른 스님들과 곳곳에 나눠서 뿌릴 때 마지막까지 무소유를 몸소 전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고인도, 유족도, 나도 행복하니까

- 지난해 매출이 궁금하다

“해마다 매출이 많이 다릅니다. 유명한 분들 장례를 맡으면 매출이 오릅니다. 추가하는 서비스가 많으면 아무래도 비용이 더 듭니다. 지난해엔 약 2억원이었습니다. 장례식 기본 비용은 사찰에서 할 경우 140만원, 장례식장에서 할 경우 240만원 정도입니다. 물론 운구차, 장식, 빈소 대여비, 음식값 등에 따라 유족이 부담하는 비용은 다릅니다.”

- 일이 힘들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때 7일간 매일 2~3시간씩 잤습니다. 화장을 끝내고 다음 날 동국대학교에서 8시간 동안 장례지도사 특강을 했습니다. 김밥을 먹으면서 수업 시간을 모두 채웠습니다. 일하는 보람이 있어서 힘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일이 없는 게 더 힘듭니다. 직원들끼리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왠지 민망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합니다. 체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장의사 일이 왜 그렇게 좋은지 조금만 더 말해 달라

“교통사고가 나서 화재로 몸의 일부가 불에 타 없어진 고인이 있었습니다. 한지와 솜으로 수의 안을 채워드렸습니다. 유족들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만질 수 있게 해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유족들이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문득 ‘고인도 참 좋아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마지막 길을 간다면 가족을 한 번이라도 더 안고 손을 잡고 싶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겪다 보면 장의사 일이 좋아집니다.”

"오랜만에 검은 양복을 안입었다"던 유재철 대표 / jobsN

- 직업병이나 습관이 있다면

“손을 다칠까 봐 11월에서 3월 초까지 장갑을 끼고 다닙니다. 알코올을 자주 만져서 손의 피부가 약합니다. 손이 갈라지거나 베이면 감염 때문에 염을 못 합니다. 고인이 전염병으로 돌아가셨는데도 이야기를 안 해주는 유족들이 가끔 있습니다. 염을 시작하고 보니 고인 몸에 반점이 많았던 적도 있습니다. 알고 보니 에이즈로 돌아가신 분이었습니다. 다급하게 장갑을 끼고 염을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다 보니 손을 다치지 않으려고 많이 신경 씁니다.”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자식들 결혼식에 안 갑니다. 괜히 눈치 주고 뒤에 가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게 피곤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내 딸 결혼식에 안 와도 좋으니 나도 안 가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꿈이 있다면

“정성스러운 장의사겠죠. 일을 배울 때 사기 치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매장 전에 가족들이 절을 할 때, 고인 위에 놓인 노잣돈을 몰래 주머니에 넣는 식이었습니다. 니스나 옻칠을 여러 번 하지 않은 저렴한 관을 비싸게 팔거나, 10만원짜리 유골함을 100만원에 파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부 상조 회사에선 무리하게 하청을 맡기다 보니 장의사 일을 잘 모르는 사람이 장례를 치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좋은 장례는 뭐라고 생각하나

“예절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형식일 뿐입니다. 형식을 신경 쓰느라 정작 고인을 위한 마음을 잃는 게 가장 무서운 것 같습니다. 그런 장례식은 고인이 아닌 형식을 위한 장례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 때 흰 국화 대신 노무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꽃을 쓴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마음에 따라 형식은 바뀔 수 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고인을 생각하면서 장례를 치르면 좋겠습니다.”
 
- 장의사에게 필요한 적성이 있다면

“마음이 따뜻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의 험한 일을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장의사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장의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알고, 모든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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